사회적인 분위기로는 주님성탄대축일, 소위 성탄절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날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님부활대축일(부활절)이 가장 중요한 날인가? 정확히 말하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우선, 기독교(基督敎)에서 ‘기독’은 ‘그리스도’의 한자식 표현으로 그 한자의 원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음만 빌려온 것입니다. 프랑스를 `불란서 (佛蘭西)’로 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독교를 그리스도교(크리스트교)라고 쓰는 것이 더 일반적이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믿는 종교는 다 기독교입니다. 천주교라고 불리는 가톨릭을 비롯해서,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간 개신교(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기독교), 정교회, 성공회 등 그리스도교 안에서 ‘갈라진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는 무엇을 믿는가? 이것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분들에게 ‘가톨릭은 정확히 무엇을 믿는 종교인가’라고 물으면 막연히 ‘하느님’ 또는 ‘예수님’이라는 대답이 대부분이며, 신자가 아닌 분들에게 물으면 ‘성모 마리아 믿는 종교?’라는 대답이 많이 나옵니다.
가톨릭은 ‘성부 하느님의 외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메시아)’임을 믿는 교회입니다. 성자께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성모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요.
성자께서는 완전한 하느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입니다. 또한 성부께서 하느님이시듯 성자께서도 하느님이시고 성령께서도 하느님이십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를 삼위일체라고 하여 ‘믿을 교리’로 가르칩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하여, 그 죗값으로 자신을 희생제물로 하여 죽고 부활하여 우리를 구원했다’고 하는 부활신앙이 중심입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착한 일 하면서 잘 먹고 잘 살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 나라에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부활에만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부활 전의 죽음 또한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세상에서 죽어야 하느님 나라에서 부활할테니까요. 즉,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가는 ‘파스카(Pascha)’는 가톨릭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입니다. (Pascha; 건너가다)
그래서 결론은, 가톨릭교회에서는 부활대축일만이 가장 중요한, 달리 말하면 가장 등급이 높은 날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은 날인 금요일부터 그 사흗날에 부활하신 일요일까지를 성삼일(거룩한 3일)이라고 해서 가장 높은 등급의 날로 여깁니다.
사순시기는 바로 이 성삼일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흔히들 사순시기가 부활대축일을 준비하는 기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완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확히 말하면 사순시기는 성삼일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우리네 옛 모습이 나오는 TV 드라마를 보면, 집안에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어머님들이 목욕재계하고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것처럼 깨끗하고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사순시기는 성삼일을, 대림시기는 성탄대축일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1. 그렇다면 사순시기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
이름(사: 4, 순: 열흘)에서 알 수 있듯이 사순시기는 원래 40일입니다. 성삼일이 금, 토, 일이므로 사순시기는 목요일에 끝남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순시기의 첫 날은 주일이 되는데, 이 날을 사순 1주일로 정합니다.
4세기 초에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베드로는 성삼일의 준비기간으로서 40일의 참회 기간을 둘 것을 규정하였으며, 이것이 사순시기 40일의 기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2. 재의 수요일은 무엇인가?
그런데 주일은 소(小)부활이라 하여, 말 그대로 부활대축일을 기념하는 축제와 같은 날이었습니다. 사순시기라고 하면 뭔가 절제하고 삼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 기쁘게 즐기는 날을 사순시기의 첫 날로 삼으니 어색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단식하면서 경건하게 사순시기를 시작하기를 원했고, 5세기 경에는 사순 1주일 직전 금요일 또는 수요일에 단식하면서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사순 1주일 직전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이 생겨나면서 이를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성 대(大) 그레고리오 교황(590-604) 이래로 재의 수요일이 사순시기의 시작일로 고정되었습니다.
3. 각종 파행과 억지 해석들
맹목적인 열망으로 재의 수요일보다 더 앞선 날에 사순시기를 시작하려는 경향으로 오순주일, 육순주일, 칠순주일 등도 생겨났습니다. 이를 바로잡고 사순시기 원래의 신학을 제대로 복구하고자 사순 1주일 앞의 다른 날들을 다 없앴으나, 재의 수요일만큼은 좋은 전통이라 여겨 인정하고 보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는 ‘사순시기는 파스카 성삼일을 준비하는 기간으로서 재의 수요일에 시작하여 주님만찬미사 직전에 끝난다’고 정리함으로써 사순시기 본연의 신원을 복구했습니다.
그런데 ‘40일’이라는 상징성에 집착한 나머지, 사순시기를 40일로 끼워맞추려는 억지 주장 또한 등장했습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대축일 직전 토요일까지의 46일에서 주일을 빼면 40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은 사순시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오히려 더 중요한 날인 주일을 사순시기에서 제외함으로써 사순시기의 신원과 성삼일의 신학을 훼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과거에는 성토요일까지를 사순시기로 보고, 그 사이 주일은 사순시기에서제외하는 이런 식의 계산법이 존재했습니다. 한 때는 파스카 성야 (부활성야)미사를 토요일 오전에 거행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파스카성야 미사를 봉헌하기 직전까지를 사순시기로 본 것이지요.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이것들이 잘못되었다고 하여 바르게 고친 것입니다.
4. 성삼일의 시점과 종점
위에서 언급했듯이 성삼일은 성금요일, 성토요일, 주님부활대축일의 3일입니다. 다만 성삼일의 시작은 성목요일 저녁의 주님만찬미사부터입니다. 즉, 사순시기는 주님만찬미사가 시작되면서 끝나는 것입니다. 성삼일은 더 이상 사순시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사순시기가 성삼일을 준비하는 기간이므로 사순시기와 성삼일은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삼일 자체가 하나로 묶여서 가장 높은 등급의 전례일이기에, 부활대축일 하루만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성삼일이 성금요일, 성토요일, 주님부활대축일인데 성목요일 주님만찬미사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주일과 대축일은 전야부터 그 전례일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미사를 바치는 것입니다. 즉, 성목요일 주님만찬미사는 성삼일의 전야제와 같은 성격을 지닙니다. 따라서 성주간 목요일은 아직 사순시기이며, 그날 저녁에 주님만찬미사부터는 사순시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성삼일을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성삼일에서 주님부활대축일이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파스카 성야미사를 두고 ‘성토요일 부활성야미사’라는 표기도 종종 보이는데 이 또한 잘못된 표현입니다. 파스카 성야미사는 말 그대로 부활대축일의 미사이므로 일반달력시간으로 토요일 밤에 봉헌되더라도 그것은 주일, 즉 부활대축일의 미사입니다. 평소 토요일 저녁미사가 주일미사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1년 중 미사가 없는 날은 하루가 아니라 성금요일, 성토요일 이틀입니다. 부활성야미사는 토요일 일몰과 주일 일출 사이에 거행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결론
-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에 시작하여 성목요일 주님만찬미사 전까지이다.
- 성삼일은 성목요일 주님만찬미사부터 주님부활대축일 저녁기도까지이다.
** 위의 내용에서 언급된 전례시기에 관한 내용 출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과로 전례개혁을하면서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가 반포한, Normae universals de anno liturgico et de calendario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이며, 현재 각 나라에서 쓰고 있는 ‘Missale Romanum (로마 미사 경본)’에 그 언어로 번역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